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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사 제7회 고종황제. 명성황후 ‘천도추모문화제 및 산사음악회’신원사 중하 주지스님 부임한 이래 해마다 추모다례제 봉행

신원사 제7회 고종황제. 명성황후 ‘천도추모문화제 및 산사음악회’

신원사 중하 주지스님 부임한 이래 해마다 추모다례제 봉행

글 정다은 기자 사진 심상보 기자

 


충남 계룡산 신원사(주지 중하)는 지난 10월 7일 신원사 중악단에서 ‘제7회 고종황제. 명성황 후 천도추모문화제 및 산사음악회를 성황리에 봉행 했다.
이 자리에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본사 마곡사 원경 주지스님, 신원사 주지 중하스님, 조한 영 충남도 문화체육관광국장, 박병수 공주시의회의장, 최훈 충남도의원, 김경수 · 이상표 · 박 석순 공주시의원, 심규덕 공주시 시민국장, 임영재 계룡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장, 강환실 계룡 면장을 비롯한 인근 사찰주지, 불자, 시민, 관광객 50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식전행사로는 지선스님의 추도법문 및 범패공연과 사물놀이, 전통예술단 ‘혼’ 공연이 이 어졌다. 
곽성열 MC의 사회로 진행된 본행사에서는 국민의례, 견진스님의 삼귀의, 우리말 반야심경, 내 빈소개, 신원자 주지 중하스님의 봉행사, 벽암장학금 전달식, 조한영 충남도 문화체육관광국 장, 박병수 공주시의회의장, 심규덕 공주시 시민국장, 임영재 계룡산국립관리사무소장 축사, 청법가,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본사 원경스님의 법어 순으로 진행됐다. 
중하 스님은 이날 봉행사를 통해 “우리나라 전국 사찰 중 명성황후 천도대재를 지내는 절은 신원사가 유일하다”며 “명성황후는 불심이 아주 돈독하셨던 분이셨으나, 역사상 마지막 황후 로 비운에 가셨다.” 며 “신원사 중학당은 명성황후와 고종황제의 염원으로 현 건물이 실존하 고 있어 이 건물 앞에서 두 분의 천도제를 올리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계룡산은 삼태극이 다 갖춰진 산으로, 지구상에 이 자리가 밖에 없을 것”이라며 “삼 태의 맥이 핵심적으로 뿌리를 박고 있는 여기 오신 분들은 큰 영광이자 행복”이라고 강조했 다.
조한영 충남도 문화체육관광국장은 “조선의 마지막 국모로 나라의 안위를 지키다 거룩한 희생 을 하신 명성황후의 애국정신과 호국영령들을 추모한다”며 “충남도는 신원사 중학당과 명성황 후 추모대제와 같은 역사 자원 전승보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박병수 공주시 의장은 “신원사 중악단은 묘향산의 상악단, 지리산의 하악단과 더불어 왕실의 기도처로, 현재는 유일하게 계룡산의 중악단 만이 남아있어 역사적으로 매우 보존가치도 높 다.”며 “명성황후가 당시 중악단 건립 목적은 오직 구국과 국태민안뿐으로 명성황후와 고종황 제의 영령에 깊은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심규덕 공주시 시민국장은 김정섭 시장을 대신한 축사에서 “명성황후의 추모제와 호국영령을 추모하며 ‘백성이 없으면 나라가 없다’는 명성황후의 ‘민본사상’을 재조명하고, 아픈 역사를 교훈으로 삼는 계기가 되고, 호국불교의 자랑스러운 전통을 이어가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임영재 계룡산국립관리사무소장은 “계룡산은 예로부터 산중의 산, 산 중의 중심, 민족의 영산 으로, 계룡산이 국립공원 지정기념 50년을 맞아 오는 20일부터 26일까지 계룡산국립공원관리 의 미래비전선포 및 음악회를 개최할 예정”이라며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했다.
대한불교조계종 6교구본사 마곡사 주지 원경 스님은 이날 법어 에서 “고종황제, 명성황후의 추모제봉행은 구국애민정신, 민본사상을 어떻게 배워 실천해야 하느냐가 중요한 것으로, 그분 들의 삶을 되돌아보게 본다.” 고 밝혔다.
그리고 “신원사는 역사적 의미가 매우 많은 이야기 거리를 갖고 있다”며 “특히 왜놈에 의한 금수강산의 굴육, 사대명장인 서산대사, 사명대사, 영규대사, 처영대사의 의병과 왜장을 안고 극락세계로 간 논개는 신원사에서 자랐다”.고 말했다.
또한 “조선말 명성황후는 구국의 일념으로 산신기도를 올렸던 곳으로, 현재 삼악단 중 계룡산 중악단만이 유일하게 남아 전국에서 많은 분들이 참배하고 있다.” 고 설명했다.
아울러 “명성황후의 기일을 맞아 민본사항, 구국사상도 알아야 하겠지만,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 또한 바르게 인식할 때로, 조선시대에 사대주의에 머물다 통째로 당한 상황과 별반 다르 지 않다”고 일갈했다.
더불어 “지금은 민초들이 올바르게 정신을 차리고 올바르게 직시할 때로, 민초들의 움직임이 나라를 구하고 나라를 지키는 힘”이라고 역설했다.
한편 한편 이날 신원사는 지역 청소년 7명에게 벽암장학금을 전달했으며, 2부행사로 가수 남 진, 지혜를 비롯해 신원사합창단 등이 꾸미는 산사음악회를 개최했다.
명성황후는 흥선대원군에 맞서 개화정책을 펼친 조선의 제26대 왕 고종의 왕비. 쇄국정책을 펼쳤던 흥선대원군의 실각 후 정권을 장악하여 개화정책을 펼쳤으며, 여성부원군 치록의 외동 딸로 16세에 왕비가 된 후 대원군과의 불화가 지속되자 반대원군 세력을 규합하여 탄핵하고 정권을 장악했다. 1876년 강화도조약, 1882년 임오군란, 1884년 갑신정변으로 이어진 일련의 사건들 가운데 있었다. 3국간섭으로 일본의 대륙침략 기세가 꺾이자 친러성향으로 굳혔다. 명 성황후와 그 세력을 일본의 조선 병합에 가장 큰 장애로 여겼던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가 일으 킨 1895년 을미사변 중에 시해당했다. 사후 명성황후로 격상되었으며 양주 숙릉에 묻혔다가 1919년 고종 사후 홍릉으로 이장되었다. 
신원사가 고종과 명성황후를 기리는 추모재를 봉행하는 것은 중악단과 관련이 있다. 중악단은 국가에서 계룡산 산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조성한 것이다. 조선 태조 3년(1394)에 중악단 을 짓고 산신제를 지내다가 효종 2년(1651)에 제단이 폐지됐다. 그 후 고종 16년(1879) 명성 황후의 명으로 다시 복원하고 중하스님이 부임하며 올해로 7번째 명성황후 천도제를 봉행하고 있다.

 

정다은 기자  jde548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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