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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완 시인과 함께하는 그림책 산책>

<이해완 시인과 함께하는 그림책 산책>

 

2019년 돼지해를 맞아 돼지를 소재로 한 그림책 두 권을 준비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외국 작가인 앤서니 브라운의 󰡔돼지책󰡕, 그리고 헬린 옥슨버리가 그림을 그린 󰡔아기 늑대 세 마리와 못된 돼지󰡕. 이 두 권의 그림책은 가정의 행복과 사회의 행복을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보여줍니다.

󰡔돼지책󰡕의 앞표지에는 검은색 사각틀 안에 엄마가 아빠와 두 아들을 업고 있다. 엄마는 무게에 짓눌려 표정이 굳어있다. 아빠는 이를 환하게 드러내고 웃는 듯싶지만 어쩐지 어색한 표정이다. 쑥스러워서 일 것이다. 두 아들은 웃고 있는데 큰 녀석보다는 작은 녀석이 더 좋아하고 있다.

피곳 씨는 두 아들과 멋진 집에 멋진 정원에 멋진 차도 있다. 집 안에는 피곳 씨의 아내가 있다. 피곳 씨는 아침마다 “여보, 빨리 밥 줘.”하고 외친다. 아들 사이먼과 패트릭도 마찬가지다. “엄마, 빨리 밥 줘요.” 이들은 밥을 먹고는 회사로 학교로 휑 하니 가버린다. 피곳 씨와 아이들이 떠나고 나면, 피곳 부인은 설거지를 하고 침대를 정리하고 바닥을 청소하고 그러고 나서 일을 하러 간다. 어쩌면 이런 모습은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풍경이다.

아빠와 아이들이 회사와 학교에서 돌아와 저녁마다 외친다. “어이, 아줌마, 빨리 밥 줘,” “엄마, 빨리 밥 줘요.” 의자에 앉아 신문을 들고 외치는 아빠의 그림자가 돼지 모습이다. 가슴에 달고 있는 배지에도 돼지가 그려져 있다. 어쩌면 우리에게 당연한 듯 보이는 일상의 모습인데, 가장의 모습에 왜 돼지의 그림자가 얼비치는 것일까? 앤서니 브라운은 여성이 가사를 다 책임져야 한다는 것은 부당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앤서니 브라운은 실제 인물을 소재로 썼다고 한다. 이 책이 출간되어 문제의 가족에게 한 권을 주었는데, 자기들 이야기라는 낌새조차 알아채지 못했다고 한다.

피곳 씨와 아이들이 저녁을 먹고 나면 피곳 부인은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고 다림질을 하고, 그러고 나서 먹을 것을 조금 더 만들어 먹는다. 피곳 씨 부인 얼굴에 눈 코 입이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희미하게 처리된 것은 집안에서 존재감이 없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피곳 부인이 집안일을 하는 사이 세 부자는 맘 편하게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어느 날 저녁, 돌아와 보니 엄마가 없다. 벽난로 위 명화 그림에는 의자 위에 하얀 윤곽선만 남아있고 안은 텅 비어 있다. 자세히 보면 모자를 쓴 여성이 드레스를 입고 두 다리를 포갠 듯한 모습임을 알 수 있다. 이는 부인이 가출했음을 암시한다. 벽난로 선반 위에 봉투가 하나 있어서 열어보니까 안에 종이가 한 장 들어있다. 종이에는 “너희들은 돼지야”라고 쓰여 있다. 아빠의 손이 돼지 발이다. 엄마가 집을 나간 순간부터 남은 가족들은 돼지가 되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엄마의 부재시 이 삼부자의 모습이 어떨지는 독자 여러분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므로 생략한다. 한 마디로 돼지우리가 되어 아이들은 엄마가 언제 돌아오느냐고 꽥꽥거린다.

돼지가 되어 음식 찌꺼기라도 찾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을 때, 엄마가 온다. 제발 돌아와 달라고 애걸하는 삼부자 앞에 선 엄마의 얼굴에 눈의 윤곽선이 뚜렷하다. 엄마의 존재감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제 피곳 씨는 설거지를 하고 아이들은 침대를 정리한다. 심지어 피곳 씨와 아이들은 요리하는 것을 도와주기까지 한다. 엄마도 행복해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가족 여행이라도 떠나려고 준비하는지 엄마가 검댕이 묻은 환한 얼굴로 차를 수리 하는 모습이 보인다.

여기까지 보면 엄마의 가출 사건이 가족에게 행복을 선사한 듯 보인다. 그런데 자동차의 번호판이 SGIP321(거꾸로 하면 PIGS 123)이다. 이로써 앤서니 브라운은 무조건적 낙관론을 경계하면서 언제든 또다시 이 가정에 위기가 올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아기 늑대 세 마리와 못된 돼지󰡕

글 : 유진 트리비자스

그림 : 헬린 옥슨버리

옮김 : 김경미

출판사 : 시공주니어

 

󰡔아기 늑대 세 마리와 못된 돼지󰡕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아기 돼지 삼형제󰡕의 패러디 그림책이다. 󰡔아기 돼지 삼형제󰡕와 달리 이 작품에서는 아기 늑대들이 돼지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내용이다.

이 책은 고정관념(선입견)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앞표지와 뒷표지를 함께 펼치면 아기 늑대들이 돼지를 애써 외면한 채 자기들끼리만 간식을 먹고 있다. 엄마 늑대가 크고 못된 돼지를 조심하라는 말만 하지 않았어도 아기 늑대들이 돼지에게 간식을 나누어 주었을 터이다. 그랬다면 불행도 없었을 것이다.

이 작품이 투고되었을 때, 아기 돼지는 착하고 늑대는 나쁘다는 고정관념을 가진 출판사들이 거절하는 바람에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 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출간이 되자, “빼어난 재주꾼만이 만들 수 있는 작품, 원전의 느낌을 살리면서 그에 버금가는 재미와 생각할 바를 주는 작품”이라는 호평을 받았을 뿐 아니라, 어린이책에서 고정관념의 폐해에 대한 논쟁을 일으켰다고 한다.

귀여운 아기 늑대 세 마리가 세상에 나갈 시간이 되었다. 엄마 돼지는 나가서 살 집을 지으라고 한다. 아기 늑대들은 처음에는 벽돌을 얻어 벽돌집을 짓는다. 그런데 크고 못된 돼지가 나타나 훅 불어 집을 날려 버리겠다고 협박한다. 입김으로 안 되자 쇠망치를 가져와 집을 부숴버린다. 겨우 빠져나온 아기 늑대들은 이번에는 콘크리트를 얻어 집을 짓는다. 못된 돼지는 구멍 뚫는 기계를 가져와 부숴버린다. 이번에는 철사와 철근과 강철판으로 정말 튼튼하고 안전한 집을 짓는다. 그렇다고 가만 있는다면 괜히 크고 못된 돼지라고 부르겠는가. 돼지는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해 집을 날려 버린다.

전쟁의 역사가 과학의 역사라고 말하는 학자가 있다. 씁쓸하지만 그런 단면을 보는 것 같다. 돼지가 집을 부술 때마다 아기 늑대들은 더 견고하고 튼튼한 집을 지어 대비한다. 하지만 더 견고하게 지을수록 집은 더 삭막하고, 돼지가 집을 부술 때 쓰는 도구는 더 강력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는 해도 작가가 이런 측면을 강조했다면 이 작품은 형편없는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아기 늑대들은 집 짓는 재료에 뭔가 문제가 있음을 깨닫고 꽃으로 집을 짓는다. 꽃으로 지은 집을 보고 돼지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번에도 역시 집을 날려버리기 위해 있는 힘껏 숨을 들이마신다. 부드럽고 향기로운 꽃향기를 듬뿍 들이마신 돼지는 기분이 좋아져서 자신이 이제껏 얼마나 못된 짓을 했는지 깨닫는다.

이제 결말을 말하지 않아도 못된 돼지와 아기 늑대들의 관계가 어떻게 개선되었을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아기 늑대와 돼지는 서로 인사를 나누고 같이 놀기 시작한다. 잡기 놀이도 같이하고 놀다 지쳤을 때는 돼지를 집으로 초대해서 차를 대접하고 마음껏 놀다 가라고 한다. 다정한 이웃이 된 것이다.

그렇다. 인간관계 또한 마찬가지다. 힘과 힘이 대립하면 불행한 종말을 맞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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