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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석의 단상>신문을 사랑하는 이유

<홍경석의 단상>

신문을 사랑하는 이유

한겨울의 새벽추위는 양볼을 예리한 칼로 성큼 베어가는 듯 했다. 입성까지 허술한 소년은 신발마저 허투루였다. 지금처럼 보온성이 좋은 운동화는커녕 싸구려 검정고무신 한 켤레뿐이었다.

 

발이 시려서 양말을 두 켤레 신었지만 별무효과(別無效果)였다. 달콤한 잠의 유혹을 떨치고 일어나 신문보급소로 달렸다. 거기서 배분 받은 신문을 옆구리에 끼고 가가호호 배달을 시작했다. 가뭄에 콩 나듯 “어린 녀석이 고생한다.”며 우유를 주는 분도 있었다.

 

반대로 ‘신문사절’을 대문에 붙여놓은 집도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소년은 여전히 그 집에도 신문을 꾸역꾸역 집어넣었다. 배달신문의 부수 증가는 고사하고 되레 감소한다면 신문보급소장의 불호령은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단한 신문배달을 마치면 엄동설한에도 전신에 땀이 흐르기 일쑤였다. 어쨌든 당시엔 조간신문이 가장 빠른 뉴스의 메신저였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소년은 그렇게 비단 신문배달만 했던 게 아니었다.

 

홀아버지가 차려 준 밥을 한 술 뜬 뒤엔 역전으로 나갔다. 이어 차부(터미널)에 정차한 시외버스에 올라가 신문을 팔아야 한 때문이다. 세월은 여류하여 당시의 소년가장은 올해 환갑을 맞았다.

 

어려서부터 습관이 된 덕분에 지금도 종이신문을 사랑한다. 구독하는 신문은 두 종류인데 전국지와 지방지다. 늙을수록 새벽잠이 없어지는 건 상식이다. 오늘도 오토바이 소리에 눈을 뜬 건 새벽 2시 20분. 그건 신문이 왔다는 신호였다.

 

오토바이는 금세 떠났다. 사는 동네의 빌라 네 동(棟) 가운에 신문구독자는 필자가 유일한 때문이다. 메리야스와 추리닝 바람이었지만 냉큼 나가 신문을 들여왔다. 그러면서 동병상련에 잠시 마음이 짠했다. 이 신문을 배달하고자 배달원 아저씨는 과연 몇 시에 기상해야 했을까...

 

신문 배달원을 직접 본 것은 이 집으로 이사 온 지 5년 만에 지난달이 처음이었다. 처음으로 신문이 도착하지 않았기에 전화를 했더니 뒤늦게 가져온 때문이다. “수고 많으신데 이 거라도...” 냉장고를 열서 음료를 드렸더니 그 시절, 우유 한 병을 받고 입이 찢어졌던 신문배달 소년가장의 표정과 비슷했다.

 

신문배달과 신문팔이 시절부터 신문을 보는 습관이 지금껏 몸에 뱄다. 필자가 재직 중인 직장은 상주직원만 수백 명에 달한다. 그러나 매일 배달되는 신문은 불과 10부도 안 된다.

 

작금 현대인들이 얼마나 신문을 안 보는 지 여실히 드러나는 ‘팩트’다. 필자는 각고의 노력 끝에 최근 두 번 째 저서를 발간했다. 저자의 당연한 의무로 언론사 간부들을 찾았다. 사인한 저서를 드리며 멋진 서평을 부탁드렸다.

 

대부분 동의했지만 한 분께선 “요즘 사람들은 신문도 잘 안 보는데 책이라고 볼까요?”라며 볼만장만(보기만 하고 간섭하지 아니하는 모양)하여 마음에 불안의 불을 와락 질렀다. 어쨌든 베스트셀러 진입을 목표로 집필한 저서인지라 자신감은 여전하다.

 

자신이 없었다면 글은 애초 쓰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배달된 신문을 펼친다. 헤드라인 뉴스가 어두움 일색이다. 먼동의 여명(黎明)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때문이지 싶다. 자그마치 50년 가까이 신문을 애독해 왔다.

 

중요한 대목은 가위로 오려 아이들의 밥상머리교육에도 활용했다. 덕분에 신문은 두 아이를 명문대로 보내는 첨병 역할까지 해주었다. 독자에서 저자로, 심지어 기자로 만들어준 것 또한 신문의 힘이었다. 앞으로도 신문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대전광역시 월간 ‘이츠대전’ 명예기자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세종.충청본부장

일간 ‘뉴스에듀’ 대전.세종.충청취재본부장

저서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저서 <사자성어를 알면 성공이 보인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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